영화

결혼이야기 를 봤다.

신가오 2019. 12. 2. 12:28

제목은 결혼 이야기 지만 내용은 이혼 이야기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혼의 과정까지도 그 끝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결혼 이야기겠구나 얼핏 생각했다.

가족의 해체라는 소재가 그렇게 즐거운 이야기는 아니라 감정이 남용되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과잉되는 감정은 하나도 없이 모두 납득이 되고 충분했다.

 

영화 속 이야기 만으로는 우리가 니콜과 찰리 두 사람의 결혼 이야기를 모두 엿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지난날들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리기는 힘들다. 

영화 속 단서들로만 보았을 때

찰리가 니콜을 착취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인간관계에 서툼으로 인한 이기적임인지,

이기적이기 때문에 내내 서툰 것인지 알 길은 없지만 말이다.

 

찰리가 내연녀 격인 앤에게 '난 당신에게 의지하잖아.'라고 둘러 댈 때 

그가 한 번에 세 가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니콜에게 두 번째는 앤에게 세 번째는 스스로에게.

찰리는 아무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이다.

누구에게도 의지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쉽게 천재라고 불리고, 스스로도 자신의 무한한 천재성을 믿어 의심치 않다.

일에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휘하는 찰리는 가족에게도 최선을 다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82년생 김지영>의 정대현처럼 누군가가 보기에는 이상적인 배우자의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다. 

니콜 역시 찰리에 버금가는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자신의 취향이 무엇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을 들으면 찰리의 항변은 모두 변명으로만 들린다. 

아무리 찰리의 기질과 상황이 이해가 된다 해도 마음의 추는 어쩔 수 없이 니콜에게 기울게 되어있다.

이혼 소송이 진행되는 내내 니콜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안도하고

확실하게 양육권을 따 낼 수 있도록, 단 하나의 손해도 보지 않기를 바라며 니콜의 편에 서게 된다.

그렇지만 이겨도 이긴 게 아니라는, 더 사랑했기 때문에 자신이 항상 졌다는 니콜을 보면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두 사람한테 그리고 두 사람이 더 나은 행복을 물려주기 위해 고군분투한 헨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니콜과 찰리가 서로를 증오하기보다는 여전히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시원함이 아닌 아쉬움이 남는 것 같다.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은 찰리가 뮤지컬 넘버를 부르는 장면이다. 

이혼 소송에서 진 후, 다시 뉴욕의 극단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

자연스럽게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는데 

노래를 하며 연기하는 모습이 정말 압권이고

그 가사에 담아내는 감정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나지 않을 수가 없다.

정말 아름다운 장면이라 이대로 엔딩 크레디트 올라가도 좋겠다는 생각을 <윤희에게>에 이어서 또 하게 되었다. 

 

영화의 여운이 다 가신 후에도 간간히 생활 속에서 떠올랐던 인물은

니콜의 변호사와 찰리의 첫 번째 변호사이다.

니콜의 변호사는 내 편견을 박살내서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고,

찰리의 첫 번째 변호사는 어찌 보면 모두가 그리는 이상적인 변호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소송의 승패를 중요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의뢰인이 진정으로 지키고 싶은 가치를 지켜주기 위해 차선을 제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니콜의 변호사는 겉모습만 보았을 때는 캘리포니아 피플 같아 보인다.

진심을 담은 위로를 건네지만 너무 능숙한 절차들에 그가 척하고 있다고 오해했다. 

물론 승소로 이끌기 위해 연기를 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니콜을 위로하기 위해 기꺼이 하이힐을 벗어 놓고 소파 위로 올라가는 모습이나,

니콜도 간과했던 찰리의 이기적인 언행에서 포인트를 잡아내어 깨달음을 얻게 하는 모습,

지저분한 파문으로 니콜을 포르노 스타 취급하는 찰리의 두 번째 변호사의 말을 들은 후 재킷을 벗고 살을 드러내는 모습에서

멋있게 편드는 방법이 무엇인지 한 수 배웠다. 

언성을 높이지 않고도 웃는 얼굴로 상대를 꾸지람하는 모습은 정말 고수였다. 

 

영화를 보고 가장 많이 고민한 것은 화는 무엇인가 이다.

두 사람의 감정이 가장 적나라하고 폭발적으로 나오는 씬이 두 사람이 화내는 씬이기 때문이다. 

나는 화를 잘 내지 않는다. 

가만 보면 사람들은 모두 순수하게 화내는 법이 없는 것 같다. 

정말 기쁠 때, 미친 듯이 슬플 때, 아주 놀랐을 때 등등 많은 감정과 함께 살지만 그 감정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뜨거운 주전자가 식듯이 늘 서서히 사라진다. 

즐겁게 웃다가 슬퍼질 수 없고 슬퍼 울다가 갑자기 웃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어쩐지 화는 다르다. 

나에 비추어 보자면 걷잡을 수 없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화를 내다가도 금세 사그라들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평정을 되찾곤 한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를 생각하다가 

정말로 순수하게 화를 내는 사람들은 아주 드물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많은 사람들이 화가 난 척 연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말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상대를 상처 주고 싶을 뿐인 것 같아 보일 때가 많다. 

나는 이만큼이나 했고 화를 낼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주장하여 관계의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따라서 너는 나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설득하기 위해 악을 지르는 것이다.

평온한 상태에서는 차마 그러한 폭언을 퍼붓는 것을 스스로에게 마저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화났음을 빙자하고 풀어내는 것은 아닐까?

 

니콜과 찰리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자 감정이 절정에 치닫는 장면은 니콜과 찰리가 원색적인 감정으로 싸우는 모습이다. 

둘은 마지막으로 헨리의 장래를 위해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조정해 보고자 한다. 

그러나 둘 다 진심으로 바라는 것과 듣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단지 헨리의 행복만을 위해 화해를 하기엔 서로 사과받고 싶은 것들과 인정받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대화가 오가며 서로의 대답을 유도하던 두 사람은 결국 소리를 지르고 폭언을 한다.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을 정도로 저주에 가까운 폭언을 하지만

이내 무너지듯 울음을 터뜨리고 서로의 체온을 빌려 위로받고 위로한다. 

 

두 사람이 대화를 하다가 화가 났다고 볼 수 도 있겠지만

둘은 화가 났다기보다는 그저 서로를 상처 주고 싶어 보였다.

폭언은 밑바닥까지 내려간 자신의 추함과 직시하는 순간 종료되어 버린다. 

상대를 상처주려던 말들이 되레 자신을 상처 입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만큼이나 했기 때문에 화 낼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외치기 위해 추할 만큼 핏대 세우지만

곧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상처주고자 자존심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품을 내주는 것으로 사과를 대신한다. 

 

두 사람은 결과적으로 건강한 모습으로 분리된다.

찰리와 니콜 그리고 아이 셋은 여전히 끈끈하게 연결되어 생활한다.

기꺼이 시간을 할애해 행사를 즐기고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사람과 불행한 사람이 없으니 이상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이런 것을 보면 모든 문제는 결혼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결혼을 하기 전이나 헤어진 지금이나 두 사람이 사랑하고 있음에는 변화가 없다. 

여전히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지만 딱하나 다른 것은 법적으로 정의되는 두 사람의 서류상 관계이다. 

애초에 결혼이 없었더라면 두 사람은 사랑하는 마음을 유지한 채로

더 쉽게 물리적 거리를 좁히고 넓히면서 시간으로부터 두 사람의 적정 지대를 찾아냈을 것이다. 

모든 제도는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때로는 인간을 구속하고 억압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결혼 이야기를 보고 한 번 더 비혼을 다짐한다. 

두 사람이 보여준 사랑에 넌더리가 나서가 아니라

더 자유롭고 구애받지 않는 사랑을 하기 위해서. 

 

소재는 이혼이지만

큰 주제인 해체와 분리만 가지고 보았을 때

<결혼 이야기는>는 정말 폭넓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야기다. 

비단 결혼이나 연애에만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 생활, 이런저런 분리를 겪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인 양 느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