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맨의 죽음 을 읽었다.
검정치마의 <난 아니에요>가 귓가에 맴돌았다.
난 웃으면서 영업하고 빈말하기 싫은걸요
그대 알잖아요 우린 저들 과는 너무 다른 것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윗줄의 가사가 떠올랐고
다 읽고 난 후에는 아랫줄의 가사가 더 어울렸다.
솔 벨로의 <오늘을 잡아라>도 많이 겹쳤는데 사실 오늘을 잡아라는 급히 읽어서 엔딩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두 책을 비교하면 꽤 재밌을 거 같아서 다시 읽고 싶기도 하지만 읽을 당시 느꼈던 좌절감과 답답함을 다시 느낄 에너지가 아직은 없어서 일단 보류다.
세일즈 맨의 죽음과 오늘을 잡아라에는 둘 다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이 나온다.
아버지는 아들이 못마땅하고, 아들은 자신의 처지를 이해 못하는 아버지가 원망스럽고.
아들은 뭔가가 해내고 싶지만 정작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아서 괴로워한다.
그 모습 속에는 꼭 내가 겹쳐 보여서 남일 같지가 않아서 내내 무표정으로 읽었다.
그나마 세일즈 맨의 죽음은 <오늘을 잡아라>보다 호흡이 매우 빨라서 감당할 수 있었다.
난 뭐가 되려고 이럴까. 뭐가 될 수는 있을까. 뭐가 되는 게 가장 나을까.
누가 좀 알려주면 좋겠다.
가끔은 인생을 통째로 맡기고 싶다.
고민하지 않고 그저 열심히 살고 싶은 게으른 마음도 있다.
뭐라도 시켜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느낌과 뭐도 잘하지 못할 것 같은 애매한 불안이 늘상 섞여서 속을 채운다.
고민하지 말자. 그냥 하자. 지나가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 다짐으로 겨우 붙잡고 있다.
p.64
비프 윌리 로먼보다 상황이 안 좋은 사람들은 많아. 난 많이 봤어.
린다 ......아버지가 훌륭한 분이라고는 하지 않겠다. 윌리 로먼은 엄청나게 돈을 번 적도 없어. 신문에 이름이 실린 적도 없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인품을 가진 것도 아니야. 그렇지만 그이는 한 인간이야. 그리고 무언가 무서운 일이 그에게 일어나고 있어. 그러니 관심을 기울여 주어야 해. 늙은 개처럼 무덤 속으로 굴러 떨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돼. 이런 사람에게도 관심이 필요하다고. 너는 아버지를 미쳤다고 생각하지만...... .
p.65
해피 (분노하여) 전혀 몰랐어요, 어머니.
린다 얘야, 한 번도 물어본 적 없잖니.
이 부분을 읽을 때 82년생 김지영이 떠올랐다.
정확히는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사실 책 속의 윌리 로먼은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남성이라
82년생 김지영을 떠올리는 것이 어불성설일 수도 있지만
한 사람은 과거의 한 때로 회귀하고, 한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 빙의하여 마음속 찌꺼기를 토해낸 다는 점에서 닮았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책과 달리 지영이 아닌 대현에 입장에서 고민하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가족이 어느 날 갑자기 이전과 달라진다면 어딘가 아픈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뭔지 알 길이 없다면 난 무엇을 해야 하나.
대현이 어느 정도 이상적인 모습을 하는 것은 알겠으나, 어딘가 척하는 것처럼만 보여서 사실상 답을 얻지 못했고, 좀 짜증 나기까지 했다.
다행히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어느 정도 답을 얻은 것 같다.
대현과 린다를 비교해 보면 된다.
어딘가 척하는 대현과 달리,미안해하면서도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는 대현과 달리
린다는 정확히 배우자의 상태를 짚어낸다.
그에게 무엇이 필요한 지도 안다.
한 인간은 언제나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그렇기에 항상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
사랑한다면 응당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