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바타와 더 글로리와 가족

신가오 2023. 2. 17. 09:38

 

 

 

아바타2를 보기 전에 더 글로리를 보아서 그런지 자꾸 더 글로리가 겹쳐보았다.

 

내가 더 글로리에서 훌륭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현실에 없는 학폭에 대한 화끈한 권성징악이 아니라, 다양한 얼굴을 한 사람들의 모성과 부성을 다채롭게 표현했다는 것이다. 모성이나 부성같은 말을 쓰고 싶지 않지만 도대체 어떤 말로 대체할 수 있는 지 모르겠다…

 

동은은 보호자는 물론이고 그 어떤 어른으로부터도 보호 받지 못한 채 어른이 된다. 동은이 경험한 어른들은 당최 기댈 수 없는 가해자이자 방치자일 뿐이다. 어머니는 어린 동은을 방치한 것으로 모잘라 가해자의 손을 들었고, 선생은 가해자의 편을 든 것으로 모자라 가해자가 되었다. 공장장에게 동은은 튀면 안되는 부품일 뿐이었다. 동은은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를 지키고 일어났다. 그런 동은을 선한 의도로 바라봐 주는 이들은 언제나 그처럼 약하고 힘 없는 여성들 이었다. 

 

보호의 부재 속에서 처절하게 살아 남은 동은이 그 누구보다 모성을 잘 이용한 다는 점이 나를 참 서글프게 한다. 현남에게서 협조를 뛰어 넘는 충성을 얻기 위해 먼저 딸아이의 교육을 맡겠다 제안하고, 여전히 당당한 연진에게  자신이 연진의 귀한 딸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존재임을 각인시킨다. 동은의 복수는 하나부터 열까지 부모의 내리 사랑에 의존하는 셈이다. 부모의 사랑과 동떨어져 보이는 동은이 복수에 사랑을 이용한다는 것은, 자신은 한번도 받아 본 적 없는 그 사랑의 힘을 누구 보다 믿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할 것이다. 

 

모든 계획은 상상력을 동반한다. 구체적인 상상 없이는 치밀한 계획이 탄생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동은의 치밀한 계획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려온다. 동은은 얼마나 많이 그 맹목적인 내리 사랑을 상상했을까. 자신은 수 없이 의심했을 그 사랑을 어떻게 믿을 수 있었을까. 남들은 귀찮아 할만큼 당연히 여기는 그 사랑에 오직 자신만 배제된 다는 것을 직면 할 때마다 세상은 얼마나 차가웠을까. 

 

어떻게 보면 동은에게 차가웠던 어른들은 누군가의 부모로 사는 것에 열중했던 사람들이다. 자기 것을 지키는데 몰두하면 자연스레 선이 그어진다. 동은은 선 밖의 아이. 어쩌면 그래서 선과 밖의 차이를 더 뼈저리게 느꼈을 지도 모른다. 선생은 자신의 아들을 욕 보이는 동은에게 가차 없이 폭력을 휘둘렀고, 동은을 희롱하던 학생의 부모는 고민 없이 돈으로 입막음한다. 다 누군가의 좋은 부모 노릇을 하기 위해 동은에게 그토록 가혹했던 것이다. 동은은 그렇게 차가운 세상에서 맹목적인 사랑의 우둔함을 확인하고 또 이용했을 것이다.

 

아바타는 다양한 엔터테인먼트의 총집합이었다. 3시간이라는 압도적인 시간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전에 본 적 없는 모든 것들로 구성된 화면이 시각적으로 황홀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런 예술을 독점하지 않고 대중화 시켜 모두와 향유하려고 하는 것인지가 궁금하고 또 감사했다. 아바타가 대단한 점은 기술적인 효과를 자랑하는데 그치지 않고 스토리적으로도 훌륭하다는 것이다. 시각적으로는 새로웠지만 이야기는 클래식했다. 수도 없이 봤을 법한 이야기를 하나도 흔하지 않게, 뻔하지 않게, 진부하지 않게, 말 그대로 클래식의 반열에 올린 것은 제임스 카메론이라는 거장만이 할 수 있다.

 

아바타는 이 지점이 참 재밌는 것 같다. 아바타라는 영화자체가 인류 기술 발전의 총집합과 다름 없는데, 나비족이라는 새로운 종족을 주인공으로 앞세워 인간을 완벽하게 타자화 한다. 선한 인간과 악한 인간의 대립이 아니라 인간을 송두리째 묶어 맹렬하게 비판하고 악자의 자리에 놓는다. 그런 악인에게 벌을 주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잘못을 저지른 어리석은 인류는 벌을 받아야 한다고 납득시킨다. 이런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고도로 발전한 기술를 적극 활용하는 인간이라는 점이 나는 미치도록 짜릿하다. 그런 비판적 태도는 모순이 아니라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에티튜드가 아닐까 싶다.

 

아바타의 큰 가지는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족으로 시작하여 가족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설리와 아내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가진 것을 모두 내려놓고 이방인을 자처한다. 망설임 없이 고개 숙이고 지키기 위해 자식들을 다그치고 성을 낸다. 그 긍지 높던 토루크 막토와 차히크는 그 모든 선택지를 뒤로 하고 자식을 지키는 것을 선택한다. 동은이 받아 본 적 없지만, 복수를 위해 이용하려고 하는 바로 그 사랑이 설리 가족의 원동력이다.

 

시즌 1에서부터 징그럽게 악연을 유지했던 마일스 쿼리치를 보면 참 연진이 생각났다. 인정사정 따위 없고 맹목적으로 타겟을 괴롭히는 모습 보다는 그렇게 인정사정 없는 사람이 자기 자식에게는 꼼짝도 못한다는 점에서 그랬다. 자식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자식이 무엇이길래, 부모란 무엇이길래 이런 터무니 없고 비이성적인 선택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대를 막론하고 납득이 되는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설리네 가족 같은 보살핌이 없어 동은은 불완전한 상태로 남게 되었지만, 또 설리네 가족 같은 가족애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동은의 복수는 완성될 수 있다.

 

아바타2도 더 글로리를 통해서 본 2023년의 키워드는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혈연관계가 전부인 구시대의 산물이 아닌 보다 유연하고 사랑으로 움직이는 대체 가족. 두 작품 다 혈연 중심적인 가족애의 어리석음을 강조하고, 친밀한 결사체로서의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시각에서 보면 아바타는 가부장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전쟁을 통해 사회가 유지되고,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어머니 보다는 아버지의 존재감이 더 뚜렷하게 느껴지고, 아버지는 양육자 보다는 상관처럼 지시하고 다그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바타는 낡지 않았다. 설리 가족은 어쩌면 사랑하는 자식을 앗아간 원수의 아들인 스파이더를 원망하기는 켜녕 끝까지 그를 아들로 챙기고 품을 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리 가족들은 그것을 대단한 선택이라 생색내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인다. 가족이라는 가치 자체가 지금은 낡은 것처럼 보일 수 도 있지만, 아바타의 가족이야 말로 혈연보다는 사랑을 앞세웠기에 가능한 대체 가족이다. 

 

3월이 되면 더 글로리의 2번째 파트가 시작될 것이고, 동은의 본격적인 복수가 시작될 것이다. 모성과 부성을 치밀하게 이용했던 파트 1과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질 수도 있다. 그러나 기대되는 것은 동은이 더이상 혼자는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동은이의 곁은 어떤 가족이 지킬까? 동은에게 보탬이 되어 주는 사람들이 단순히 성애적이고 배타적인 관계가 아닌 진정한 가족으로써 동은을 지지해주고 지켜주면 좋겠다. 동은이 복수를 위한 상상만으로 가졌던 가족의 사랑을 넘치도록 누리면 좋겠다. 누가 동은의 처절한 몸부림을 끝까지 지켜볼까? 

 

나는 당신을 봅니다. 대단한 노력이 아니더라도 그저 지켜봐주는 것만으로도, 이상을 알아채 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훌륭한 가족이 되어줄 수 있다. 어쩌면 이 사회는 이웃이 되는 것만으로는 모자를 지도 모르겠다. 가족이 그토록 중요한 가치라면, 같고 다름을 기준으로 배타적으로 선을 긋기 보다는 우리 모두가 하나(one. 종교적 의미x)의 자녀이자 부모라 생각하며 보살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