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사전 지식 없이 영화를 보는 걸 좋아한다.
윤희에게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은
퀴어영화라는 것, 김희애가 나온다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소혜가 나왔을 때 진짜 그 소혜인가 갸우뚱했고
배경이 일본이라 그것도 의아했다.
김희애가 일본어를 하려나... 아님 저 일본 배우가 한국어를 하려나...
하여튼 간에 잡생각이 많았다.
요즘 영화를 보면서 참 수시로 울컥하고 눈물을 줄줄 흘릴 때가 많은 감정적인 상태인데
윤희에게는 그 절정이었다.
덤덤하게 받아들이려는 한 여자의 삶이, 가족의 모습이, 지난 사랑이 다 마음이 아팠다.
내가 좋아하는 그 촉촉한 목소리로 하는 모든 말들이 다 과하게 나를 채워서 어떻게 하지를 못했다.
가장 좋았던 장면은 윤희와 쥰이 다시 만나고 눈길을 걸어가는 장면이다.
시퀀스가 끝나고 화면은 서서히 어두워지면서 자박 자박 눈 밟는 소리만 가득해질 때.
사실 그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줄 알았다.
감정이 제일 고조되는 순간이기도 했고
그 순간이 너무 아름다워서 이보다 아름다운 엔딩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준에게'로 시작하는 편지가 흘러나올 때 다소 아쉬웠다.
윤희의 삶을 내레이션으로 읊는 것은 너무 설명적인 것 같았고 축약해버리는 것 같아서 못마땅했다.
그러나 이건 완벽한 내 속단이었다.
곰곰이 곱씹어 보니 윤희는 설명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돌려 말하지 않고 명확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윤희의 성장이자 용기였을 것이다.
지나간 사랑인 것은 중요하지 않다.
사랑은 연속적이지 않아도 영원히 남는 것이니까.
영화를 마치고 제일 먼저 한 건 언젠가 스치듯 봤던 윤희에게 OST집을 검색한 거다.
초회한정반 OST집을 사러 무작정 북페어에 갔다가 캐롤 각본집만 손에 들고 왔다.
사실 캐롤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데... 나도 이게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캐롤 생각을 했다.
당연한 것 같다.
아마 많은 사람이 윤희에게를 보면서 캐롤을 떠올렸을 거다.
나는 계절적 분위기 때문에 떠올랐다.
이제 캐롤은 겨울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영화가 되었는데 나에게 있어서는 윤희에게가 그런 영화가 될 것 같다.
윤희에게가 보여준 겨울은 최고였다.
앞서 캐롤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건 영화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부족해서 그런 거다.
분명히 볼 때는 눈물 콧물 다 흘렸는데
아무래도 로맨스랑 거리가 먼 인간이라 그런지 경험 부족으로 인해 영화의 감정선을 완벽하게 따라가지 못했다.
개봉할 때 봤으니 이제 4년이 흘렀는데, 지금 다시 보면 다를까?
윤희에게를 다시 본다면 눈이 오는 날 보고 싶다.
첫눈이 올 때까지 윤희에게가 극장에 걸려있으면 좋겠다.
추신. 나도 네 꿈을 꿔.
나는 요즘 나 혼자만 나오는 꿈을 주로 꾼다.
추신.
윤희에게를 보고 정말 오랜만에 백수여서 좋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백수여서 오전에 이 좋은 영화를 보면서 가슴 벅차 할 수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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