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전에 영화 좋아하는 친구가 별로였다는 얘기를 전해줬다.
그렇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전도연을 아주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선택 이유는 순도 100%로 연기하는 전도연을 보고 싶어서였다.
예고편에서 본 전도연의 "네가 먼저 쳤다"는 아주 강렬했다.
이 장면에 눈이 멀어서 보기로 마음먹은 것이기 때문에
2시간 내내 전도연이 네가 먼저 쳤다며 술병으로 다른 남자들이 대가리만 깼다고 해도 나는 별점 다섯 개는 줬을 거다.
영화가 시작할 때는 <타짜>가 떠올랐고 조금 더 보다 보니 <타짜 3>가 떠올랐다.
나는 <타짜>를 아주 좋아하지만 <타짜 3>은 아주 싫어한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그런 영화였다.
오... 좀 하나 본데? 하다가 아... 요즘도 이런 영화를 만들어?? 하고 탄식하게 만드는.
뭐라고 하는 게 좋을까....
실망스러웠다.
전도연 말고는 기대한 것이 없으니 실망할 것도 없는데 참 실망스러웠다.
이는 내가 아주 오랜만에 한국 조폭(?) 물을 봐서 그런 것 같기도 한데,
간만에 보는 만큼 뭐 변한 게 있지 않을까, 오랜만에 보니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했던 것들이 전부 좌절됐다.
예고편에서 본 전도연의 배드 한 이미지가 쭈욱 영화를 관통하는 메인 서사일 거라고 믿었는데
(당근 주연도 전도연이니까!)
별로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왜 그런지 몰라도 꼭 그렇다.
어쩐지 알탕 같아도 여자가 주인공이라고 해서 들춰보면 당최 누가 주인공인지 아리까리하다.
주인공이라고는 쳐주면서 딱히 신경 써주는 것 같지도 않고... 바지 사장 같은 건지 뭔지;)
분명히 극을 끌고 가는 중심 서사이기는 했으나
정해진 시간 동안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다보니 제대로 분량이 할애되지 않았다고 느꼈다.
나는 알탕 느와르를 아주 싫어해서
아무리 전도연이 나온다 한들 할당제처럼 억지로 끼워 넣은 캐릭터였다면 보지 않았을 거다.
그래도 전도연이 주연이라고 하니 이거 알탕은 아니겠구나~ 하고 봤더니 이게 웬걸; 알탕이었다.
뭐 캐릭터 성별을 1:1로 맞출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것도 최대한 좋게 봐줘서 하는 핑계지만)
(쥐어짜듯 세어보면) 중요한 여자 캐릭터가 셋이나 나오니 이거 알탕이라고 보기는 힘들지 않냐?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싫어해서 한동안 쳐다도 안 본 알탕의 그것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첫 번째로 쓸데없이 잔인한 거.
칼을 잘 다루는 싸이코 꼬봉들은 왜 꼭 빠지지를 않을까?
솔직히 오글거린다. 하나같이 말도 안 하고 천진하게 살인에 미친 나에 취한 모습이라 굉장히 중2병스러운데
그걸 보고 공포감을 느껴야 하는 것도 너무 별로다.
두 번째로는.... 아무리 범죄물이라고 한들 왜 꼭 룸싸롱 문화는 빠지지 못할까?
뭐..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라 룸싸롱 없이는 뒷 세계를 그려 내지 못한다고 치자
근데 2020년에 범죄 장면을 포르노화하는 건 너무 게으른 것 아니냐는 거다.
난 진실로 그런 장면을 아주 오랜만에 봤다.
매 맞는 아내... 속옷만 입은 채 손과 발이 결박된 여자... 이거 너무 같은 쪽으로 일맥상통하는 거 아닌가?
내 취향이 너무 빻아서 아무것도 아닌 장면에서 포르노를 느꼈다고 할 수는 없을 거다.
의도가 너무 명백히 보였으니까.
카메라로 야릇하게 비추는 구도가 너무 역겨웠다.
영화에서 좋았던 점은 영리한 시간 배열과 제목뿐이다.
현재와 멀지 않은 과거들이 동시간대에 배치되면서 긴장감이 유지되었다.
의도적으로 형사가 진짜일지 아닌지를 계속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 한수였다.
사실 형사는 맥거핀이나 다름없었는데
과연 형사가 누구의 편인지 누구를 속이려고 하는지를 한 겹 감추어 두어서 긴장감이 조성되었다.
그러나 시간 배열에만 힘을 쏟아서 정작 힘을 주어야 하는 인물들의 캐릭터가 약해서 아쉽다.
이런 영화는 보통 매력적인 설정의 인물들이 너무 많아서 문제여야 하는데
아예 없었다..
전도연이 연기한 연희도 전도연이니까 끝내주는 거지 캐릭터 자체가 깊이 있지는 않았다.
시간은 입체적이었으나 인물은 너무나 평면적이어서 아쉬운 영화였다.
(진짜 시간 배열에 공들인 영화를 보고싶다면 <타임 패러독스>를 추천한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보고
선우정아의 <배신이 기다리고 있어>가 생각났다.
사실 선우정아의 노래가 조금 더 아깝긴 하다.
때로는 배신을 곁에 두기도 하고,
때로는 배신을 기다리기도 하고,
때로는 배신 그 자체 이기도 한 연희.
연희와 아주 잘 어울리는 노래이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트롤: 월드 투어 (더빙/자막) 를 봤다. (0) | 2020.05.01 |
---|---|
버즈 오브 프레이(할리 퀸의 황홀한 해방)을 봤다. (0) | 2020.03.03 |
포드 V 페라리 를 봤다. (0) | 2019.12.23 |
겨울왕국2(더빙) 를 봤다 (0) | 2019.12.03 |
결혼이야기 를 봤다. (0) | 2019.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