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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트롤: 월드 투어 (더빙/자막) 를 봤다.

개봉일부터 시작해서 삼 일간

더빙-자막-더빙으로 총 3회 관람했다.

참고로 어린이날까지 총 6회를 관람할 예정이고 그 후로는 VOD로 볼 예정인데

마찬가지로 더빙-자막-더빙 순으로 보게 될 것 같다. 

 

트롤은 지극히 사적인 이유로 보게 됐다.

웬디가 더빙을 한다고 해서ㅎㅎ

이왕 보는 거 전후관계를 이해하고 싶어서 전편과 애니메이션 시리즈도 섭렵했다.

그 결과는?! 트롤에 스며들었다.

 

애니메이션은 더빙으로 보는 걸 좋아한다.

애니메이션이야 말로 작은 구석까지 공들여서 만든 장면들이라 자막의 가림 없이 보고 싶은 이유가 크고

무엇보다 더빙판에는 아이들이 있어서 좋다.

다소 산만한 아이들이 '관크'를 한다고 해서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불편해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경험상 관크는 애어른 할 것 없이 다 있다.

시종일관 핸드폰 보는 어른, 보면서 떠드는 어른, 자리 이동하는 어른 다양하게 많다.

관람 매너는 나이가 아니라 개인 성향과 부주의함이 가장 크다. 

 

여하튼 어린이들이 있는 관에서 보면 좋은 점이 뭐냐면

내가 볼 땐 별로 웃기지 않은데 다 같이 재잘재잘 자지러지는 것도 재밌고

나는 웃긴데 애들은 시큰둥해하는 것도 재밌다.

트롤에서는 당연 왕이빨이 등장하고 미스터 딩클 몸이 늘어날 때 애들이 화면을 가리키고 재밌어했는데 난 썩 웃기진 않았다.

반대로 나는 스무스 재즈가 나오는 부분이 웃겼는데 애들은 시큰둥했다.

지금의 나로서는 잘 느끼지 못하는 포인트를 애들은 짚어내서 그 점이 재밌다.

또 같이 온 보호자들과 소곤소곤 떠드는 것도 나쁘지 않고~

별안간 보호자한테 뽀뽀하거나 어리광 피우는 것도 재밌다.

나도 저랬었나 싶기도 하면서.

트롤에서 재밌었던 건 "새끼손가락 약속"을 할 때 애들이 정말로ㅋㅋㅋ 새끼손가락을 들고 흔들던데

그게 참 웃겼다. 사실 첫날 조조는 트롤 팬이거나 웬디 혹은 로운 팬들이 온 게 분명해서 다들 어른이었고..

자막도 어린이들은 없었는데 너무 사랑스러운 차이였다.

스트링을 파괴하고 비트를 만들 때는 같이 박수를 치는 애들도 있었고.

이런 상황은 어른들만 있는 관에서는 경험하기 힘들다. 

 

더빙을 볼 때 내가 좋아하는 포인트는 더빙에서만 살리는 디테일이다.

겨울왕국에서는 안나의 언니언니가 그것이고

트롤에서는 파피둥이 브랜치둥이 같은 것들이 있다.

일단 자막과 더빙에서 다르게 번역된 부분을 짚자면,

자막에서는 브랜치가 히코리에게 "허세 쩌네" 라고 하는데 

더빙에서는 "놀고들 있네"라고 한다.

나는 후자가 더 자연스럽고 좋았다.

허세 쩌네라는 말은 브랜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브랜치가 염세적이긴 하지만 그런 말을 할 스타일은 아니기에...

분명히 3차 관람에서는 자막과 달랐던 포인트들이 바로바로 보였는데

막상 자리에 앉으니 기억들이 증발됐다. 6차쯤에 혹은 vod로 보고 난 후에 다시 짚어 봐야겠다. 

대충 기억나는 건

power code가 각각 자막에서는 '절대 코드' 더빙에서는 '최강 파워 코드'라고 번역되었고

나는 최강 파워 코드 쪽이 더 좋다. 더 유치하니까? ㅎㅎ

그리고 요들트롤들 말버릇이 ㅈ을 z로 발음하는 건데

그래서 말하는 단어들에 ㅈ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zㅛ

 

프린스 디의 랩 부분 더빙을 비롯해 랩 파트의 더빙들이 아주 훌륭했는데

원어 버전에서는 어떻게 부르는지 비교하고 싶었지만

공교롭게... 딱 그 부분에서 잤다가 파피와 브랜치가 듀엣을 시작할 때 깨서 홀라당 놓쳤다.

다음번엔 기필코!

 

더빙에서 아쉬웠던 점은

펑크 트롤들이 농담할 때 "아재 개그" "핵노잼"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

난 아재 개그라고 불리는 개그는 좋아하지만, 그것들을 아재 개그라고 부르는 걸 싫어해서.. 좀 많이 아쉬웠다.

게다가 맥락상 전혀 아재 개그도 아니었고.

또 상당수 많은 노래들이 자막 편과 똑같이 원어 그대로 나왔는데 이게 상당히 아쉬웠다.

자막을 안 봤으면 그냥 백그라운드 뮤직이라고 생각하고 넘겼을 텐데, 자막을 보니 내용과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라는 걸 알게 됐다.

특히 락은 그냥 다 원곡을 가져다 썼다.

팝 매들리 부분도 마찬가지이고.

분명 팝 매들리는 귀에 익숙한 곡들이라 굳이 자막이 달려있지 않아도 즐길 수 있지만,

번역이 되지 않아서 놓치는 포인트가 있는 게 아쉬운 부분이다. 

첫 부분에 u can't touch this가 나오는데 가사도 단순하고 해석이 필요한 곡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더빙판에서 그냥 bgm처럼 들었을 때는

you can't tocuh this라고 노래하며 경악하는 부분이 그냥 웃겼는데

자막으로 "이건 건드리면 안 되지!"라고 달려있는 걸 보니까 맥락상 이 장면이 왜 필요한지 이해되었다. 

파피의 친구들이 패션으로 본때를 보여주겠다며

자기들이 해석한 락커 차림으로 하드록을 부를 때도

더빙으로 봤을 때는 그냥 하드록을 흉내 내네 하고 웃겼지만

자막을 보니 그들의 가사가 무지개, 유니콘 뭐 이런 것들이라ㅋㅋㅋㅋ

팝 트롤들이 최선을 다해서 하드록을 흉내 내지만 본질은 유니콘 어쩌고나 외치는구나 해서 사랑스러웠다... 귀여웡..

락과 히코리의 노래의 가사들도 다 내용이 있는데 그냥 가사 없이 느끼니.. 고것이 좀 아쉬웠다.

 

이제 더빙과 자막을 떠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트롤: 월드 시리즈가 쿨한 이유는 기대한 것 이상의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다.

하나가 되돼, 똑같아서는 안된다는 것. 

요즘에 고민하고 있는 것이었는데 트롤들이 정확히 짚어줬다. 

영화에서는 '다르다'라는 것이 계속 언급된다. 

처음에는 파피가 우리와 다른 트롤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이냐고 하지만

그 다음에 다르다를 언급할 때는 컨트리 트롤들을 만났을 때로 "이건 '너무' 다르잖아"라고 한다. 

다름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캐릭터가 너무 다르다고 안됐다고 하는 부분이 현실적이어서 느끼는 바가 많았다.

요즘 내가 고민하는 지점도 딱 이거였다.

개념적으로는 우리 모두가 다르다는 것, 다른 것이 당연하며 모두가 다른 우리가 존중되어야 더 나은 세상이 된다고 알고 있지만,

막상 '너무' 다른 것을 보면 저절로 피하게 되고 '화합'이란 이름아래 통일되기를 바란다.

근데 그 '너무'의 기준은 무엇이며, 얼마나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그 기준이 있다면 정말 다른 것일까?

우리가 소위 악이라고 하는 것들도 다양성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최소한의 선을 그어놓고 반드시 없어야 하는 것으로 취급해야 하는 가 

뭐 이런 것들이었다. 

답은 바브의 아버지가 준 것 같은데

지금의 나와 너무 다른, 그러나 누군가의 모습과는 다를 바가 없는 바브의 아버지가

"그냥 저들이 저렇게 살게 내버려 둬~ 너도 그렇게 살고~" 이런 말을 하는데 이게 딱 내가 원하던 답인 것 같다.

나랑 얼마나 다른지 왜 다른지 어떻게 다른지 이해시켜주길 바라기보다

그냥 내버려 두는 게 가장 나은 것 같다. (방치하지는 않되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1차 관람했을 때 경악했던 장면은 스트링이 파괴되고 트롤들이 색을 잃었을 때이다. 

심장 소리로 비트를 만드는 게 너무 오글거렸는데

그 장면을 오글거리게 느끼는 내가 너무 안타까웠다.

항상 촉촉한 마음을 가지고 살고 싶었는데.. 왜 이지경이 되었는지.

그래도 3차 관람에서는 '웃음기 쫙 빼고'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단체로 노래하는 부분도 더 멋지게 느껴지고 노래도 익숙해져서 잘 즐겼다.

아아 또 3차가 되어서 새롭게 느낀 감상은

바브가 파피에게 기타를 넘겼을 때와 파피가 바브에게 기타를 넘겼을 때가 정확하게 대비되고 있는 게 다시 보였다.

같은 도구를 파괴의 의미로 건넨 것과 화합의 의미로 건넨 것.

고작 애들 보는 영화라고 하기엔 너무 쿨한 메시지다.

 

또, 다르기 때문에 사랑하고 모든 것을 존중해야 한다는 메시지와 다르게

팝은 절대 선으로 하드락을 악으로 표현하고 있는 데다가 비주류 음악들의 비중이 다소 작아서 불편했는데

3차 관람 때는 제작자들 역시 이런 팝 중심적인 시선을 문제로 잘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펑크 트롤들이 팝 트롤들의 과오를 이야기할 때, 나는 이게 연좌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생각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히 존재할 때 가해자의 자손들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역사를 제대로 직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야기한다고 생각했다.

팝 트롤들의 사랑스러운 버릇인 스크랩북 만들기를 인용해서 (역사를) 자르고 붙였겠지라고 디스 할 때라던지,

역사책을 먹으려고 하는 왕이빨에게 "역사는 먹으면 안 돼!"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고 더 그렇게 느꼈다.

그러나 3차 관람을 하고 나니 팝을 비롯한 메인 스트림에게 경고하고 있다는 게 잘 느껴졌다.

팝 트롤이 테크노, 클래식, 컨트리, 하드락, 펑크 트롤의 스트링을 훔쳐갔다는 게 무엇을 비유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꽂혔다.

다른 누구도 아닌 팝 '트롤'이 스트링을 훔친 이유는 정말로 팝 '음악'이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다.

바브가 팝을 최악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이유도 오리지널리티가 떨어지기 때문이었는데 이도 같은 맥락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팝을 친숙하게 느끼는 이유는 파피의 아버지 말처럼 단순한 멜로디 반복되는 후렴도 있겠지만, 

어디선가 빌려온 음악이라는 이유가 크니 말이다.  

팝 트롤이 다른 트롤의 스트링을 훔치고 그들을 하나로 만드려고 했다는 비유가 정말 시니컬했고 이해하고 나니 한방 먹었다.

 

웬디 덕에 트롤에 과몰입하게 되어 파피와 트롤들에게 진심이 되었다.

웬디가 더빙을 잘하기도 했지만, 이미 웬디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 내가 보았을 때는 파피의 모습과 겹치는 부분과 표정이 너무 많아서 더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콩깍지가 끼어졌기 때문이겠지.

그렇지만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좋아하고

작은 말에도 진심을 담은 리액션을 하며 반응하는 것

언제나 낙관적인 태도로 삶을 대하는 것

어린 애들을 좋아하고 그들에게 상냥한 것

도전을 피하기보다는 새로운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즐기는 것

파피의 모습에서 웬디가 보여 매 순간순간 행복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브랜치는 파피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전했고 파피도 사랑한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어쩐지 이게 성애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전 시리즈에서도 계속해서 '절친'이라는 이름 아래 두 트롤의 우정이 강조됐기 때문이다.

어쩐지 후속에서도 둘을 연인으로 표현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는데

그래도 계속해서 브랜치는 파피를 사랑하고 파피도 그를 어떤 방식으로든 사랑하고 있을 거다.

 

여자 주인공은 노골적인 핑크로 남자 캐릭터는 노골적인 파랑 계열로 표현하는 다소 게을러 보이는 캐릭터 묘사를 하고 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전편에 비해서 페미니즘적으로 많이 개선되었다고 느낀다.

일단 첫 편에서는 사랑을 얻기 위해서 코르셋 채우기가 메인 내용이었지만 (물론 결국 극복하는 내용으로 가긴 함)
이번 편에서는 외적인 묘사는 거의 중립적으로 나온 것 같다.

아무래도 '다름'이 주요 메시지다 보니 겉모습만으로 성별을 유추할 수 있게 설정한 것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

가이 다이아몬드가 출산을 하는 장면도 그렇고 최대한 성별 고정관념을 피할 수 있는 다양성을 보여주려고 한 시도가 느껴졌다.

두 여성 지도자가 자신의 신념을 바탕으로 전진하고 있는 것도 상당히 페미니즘적이었고.

 

토요일, 일요일에도 트롤을 보고 싶지만 더빙은 저녁시간 대에 배치가 되어있지 않아서 

별 수 없이 평일에 세 번 더 보게 될 것 같다.

더빙 버전의 Trolls Wanna Have Good Times, It's All Love, Born to Die,  Perfect for Me, Just Sing 도 정말 정말 너무 좋은데...

제발 제발 더빙 버전 사운드 트랙이 나오면 좋겠다....

진짜 진심이에요.... 

제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