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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쿄 아이돌스 를 봤다.

<도쿄 아이돌스>을 본 후 모두가 느꼈을 묘한 찝찝함을 곱씹다가 내린 결론.

'이거 일본의 아이돌 산업을 지적하는 척하면서 되레 영업하는 고도의 전략이 아닌가.'

리오의 메이저 데뷔를 위해 붙은 자본들이 넷플릭스를 끌어들여 글로벌 어그로를 끌었거나, 넷플릭스로 부터 다가온 기회를 영리하게 이용했거나. 

 

다큐를 보면 알 테지만, 도쿄 아이돌은 일본 아이돌 산업을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보다 보면 비판의식은 잠시 모른 체하고 메인 스토리의 주인공인 리오를 응원하게 된다.

 

제작진들이 가장 우려했어야 하는 부분인데,

나조차도 리코딩을 하며 스스로를 '아이돌'이 아닌 '리오'라고 말하는 리오를 내심 응원하고 있었다.

트위터와 유투브에 리오를 검색해서 기어코 근황과 뮤직비디오를 찾아봤으니 말이다.

나만 그런것은 아닌지, 유튜브에는 넷플릭스를 보고 찾아왔다는 댓글이 대다수였다.

 

과연, 제작진이 이러한 시청자들의 반응을 몰랐을까?

아니면 알면서도 리오에게 정이 들어 어쩔 수가 없던 걸까?

아니면 애초에 리오를 응원하게 되는 연출을 의도한 것일까?

 

 

<도쿄 아이돌스>은 크게 두 가지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아이돌 산업의 구조를 지적하는 파트와 마이너 아이돌 리오의 성장을 보여주는 파트.

두 파트가 교차하면서 스토리를 이끌고 있는데,

후반부 이후 부터 보이는 리오의 파트는 성장기처럼 그려져 처음의 의도와 상당히 동떨어져있다. 

 

순차적으로 나이가 어려지는 아이돌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들에게 열광하는 팬들은 굉장히 크리피 하다.

이와 덧붙여 여성학적으로 왜 이러한 '어린' 아이돌에게 집착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지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주고 있는데,

제작의도를 잘 보여주는 듯 하다가 별안간 도전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리오와 그의 순정파 팬인 리오 브라더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적게는 10살 이상 차이나는 초등학생 아이돌을 보며 열광하는 팬들을 보고 경악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테지만,

말 그대로 '진심'인 리오 브라더스에게 손가락질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비판적인 시선을 던지라고 하면 충분히 비판할 수 있을 테지만 그들의 진심을 본 이상 어디 그게 쉬운 일일까? 

 

나의 경우에도 두 가지 파트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달랐는데

점점 나이가 어려지는 아이돌에 열광하는 모습은 자뭇 진지한 표정으로 봤지만 상대적으로 흥미가 떨어졌고 (조금은 뻔한 이야기라)

리오 브라더스가 등장하는 부분은 공감이 되어서 피식 웃기도 하며 흥미롭게 봤다.

 

이건 내가 아이돌 팬이라는 상황과 맞물려서 인 것 같기도 하다. 

아이돌을 좋아하면서 사실 여러 가지 모순점을 느낀다.

사실 늘 자기변명을 할 수밖에 없다.

좋으면 좋은 이유를 꼭 말로 표현하고 싶은데, 세밀하게 따지고 칭찬하는 것이 곧 품평이 되는 건 아닌가 하는 딜레마에 빠지기도 하고

열광하다가도 내가 지금 이것에 열광하는 것이 건강한 일인지 고쳐 묻게 된다.

날이 갈면 갈수록 반페미니즘적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지만 사람과 사람으로 구성된 관계이니 만큼 떨쳐내기가 쉽지 않다.

 

아이돌 산업과 페미니즘은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아이돌을 응원하고 그들의 성취를 지지하는 것은 분명히 한 개인인 여성을 위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성취하는 구조가 누구에 의해 결정되었는지를 보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일본 사회에서) 여성이 꿈을 이룰 수 있는 공간을 제약해 놓고 그 안에서 경쟁하게 만드는 프레임,

그 프레임을 미디어에서 적극 노출하여 이미 어린 아이돌들과 그보다 더 어린아이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 기쁜 일로 느껴지게 하고,

시청자인 남성들에게 선택권을 주어 가성비 넘치는 권력을 느끼게 해 주니까 말이다.

 

하지만 내가 남성이 아니라는 이유로 쥐어짠 변명권이 생기는데

가성비 넘치는 권력을 갖고 싶어서 그들을 응원하는 게 아니라는 항변이다.

내가 아는 많은 팬들도 남성팬을 지적할 때 이 구조를 이용하여 비판하지만,

우리가 그 구조 속에서 아이돌을 응원하는 것이 어떤 식으로 산업에 가담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애써 흐린 눈 하고 있다.

나조차도 당장 아이돌 산업을 아예 없앨 수 없는 이상 우리 같은 팬들 조차 없으면 아예 빻은 쪽으로 가는 걸 막을 수 없다는 게 주 논리이니까.

 

내 선에서는 뭐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씁쓸하다.

정말 아무것도 없을까? 건전하게 응원하는 것이 최선일까?

 

아이돌 응원도 스포츠 팀을 응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요즘은 다양한 차트와 줄 세우기로 별의별 성적을 다 매기고 그런 임의적인 차트에서 이기는 걸 굉장히 자랑스러워하니까.

그런데 한 가지 영역에서만 유독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큰 차이가 무엇일까?

알 것같기도 한데 명쾌하게 말하지 못하겠다.

 

부디 누군가를 응원하는 일이 누군가를 착취하는 일과 맞물려 있지 않기를 바란다.

또 응원을 이유로 자신의 불건전한 욕망을 채우려고 하는 일도 없어지면 좋겠고.

정말 건강하게 응원하고 연대감을 느끼는 그런 구조가 자리 잡으면 좋겠다.

 

답은 얻지 못했지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기는 하다.

여전히 스스로의 변명에 갇힌 것 같아 찝찝하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