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표 하이틴 로맨스 코미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와 그 후속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P.S. 여전히 널 사랑해>를 최근에 봤다.
최근에는 하이틴 로맨스가 많지 않았는데 넷플릭스가 이 시장을 아주 영리하게 노렸다.
이런 영화는 되게 엄청난 작품성을 가지고 있기보다는 다소 뻔하더라도 공감하며 볼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인데
<내사모남>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정석대로 하이틴 무비를 만들어 대외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반쪽의 이야기>를 함에 앞서 <내사모남>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두 영화가 묘하게 겹치기 때문이다.
큰 키워드만 꼽자면, #편지 #동양인 여자 주인공 #고등학교 #넷플릭스 가 되겠다.
사람들은 언제나 사라진 것들을 쫓는다.
혁명이 없는 시절에는 혁명을 쫓고
순정이 없는 시절에는 순정을 쫓고.
편지보다는 넘쳐나는 메신저들로 마음을 전하고 있는 요즘
<반쪽의 이야기>와 <내사모남>을 미루어 보았을 때 넷플릭스가 쫓은 건 편지 같다.
연애편지를 대필해 주다 편지의 상대에게 빠지게 되는 설정은 꽤 흔한 로맨스 소재이다.
<클래식>에서도 친구의 부탁을 받아 사랑하는 여자에게 편지를 써주는 것으로 가슴을 절절하게 만들었고.
서로 사랑하는 사람은 따로 있지만 작전을 위해 붙어있다가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는 이야기도 흔하고 말이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에서도 그렇고 결과가 물 보듯 뻔함에도 아슬아슬한 긴장감과 자연스러운 관계 변화가 느껴져 언제 보아도 재미있다.
특별한 소재와 설정이 없음에도 <반쪽의 이야기>가 뉴 노멀 하다고 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안에서 담담하게 퀴어를 녹여내고 있기 때문이다.
2003년 작 <클래식>에서는 편지를 대필하는 사람이 남자 주인공이었고
2018년 작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에서는 붙어 다니던 두 사람 사이에서 사랑이 싹텄지만
<반쪽의 이야기>에서는 이 지점을 트위스트 하여 늘 있던 이야기를 전혀 다르게 만들었다.
아주 작은 차이로 이전에는 없던 이야기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로맨스의 부재이다.
하이틴 로맨스의 탈을 썼지만 결국 엘리, 폴, 애스터의 성장 영화이다. (사실 모든 로맨스 영화는 성장을 기반으로 하지만)
그래서 엘리가 누구와 사랑을 나누었냐고 묻는 다면 둘 다라고 할 수 있는 것도 뉴 노멀답다.
성애적 사랑이 아니더라도 인간관계에서 누릴 수 있는 깊은 정신적 교감을 나눈 것은 분명하니 사랑은 분명히 있었지만
기대한 로맨스는 없었다.
<내사모남>이 흔한 이야김에도 흥행한 이유는 happily ever after 였기 때문 아닌가?
<반쪽의 이야기>에서도 왜 그러면 안되는지,, 좀 아쉽다.
애스터와 더 확신을 나누는 사이로 발전했으면 좋았을 텐데... (물론 성장으로 마무리되는 결말도 이해는 한다)
결말을 향해 갈 수록 <레이디 버드>가 많이 생각났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벗어나 대학으로 불려지는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겹쳐 보이기도 했고
사랑, 우정, 가족 안에서 다툼과 화해로 마침내 성장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완벽한 성장영화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다만 <레이디 버드>는 성장이라는 큰 틀을 유지하고 사랑은 그에 포함되는 과정에 불과했지만,
<반쪽의 이야기>는 줄곧 사랑을 이야기 하다 급히 성장으로 마무리하였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생겨났다.
두 번 볼 것 같지는 않지만
사랑을 쫓는 두 친구 엘리와 폴이 사랑을 위해 진지하게 변화하던 모습이나
서로를 위해 사랑을 베푼 모습은 꾸준히 생각날 것 같다.
아마 폴과 엘리는 특별한 의도 없이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한 행동이었겠지만
유치하게 놀리는 아이들에게 대신 화를 내주는 폴과 폴 몰래 타코 소시지를 홍보하던 앨리는 감동적이었다.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순수하게 베푸는 호의를 보여주는 행동이라 더 그런 것 같다.
엘리와 애스터가 성숙한 정신적 교감을 폴이라는 매체이자 가면 없이 나누는 씬들도 인상 깊었다.
그간 엘리는 늘 폴이라는 가면을 이용해서 대화했지만,
계곡(?)에서 대화할 때만큼은 가리고 있던 모든 것들을 벗어 놓고 서로의 내면을 느끼기 위해 힘썼다.
반쪽의 이야기.
그래서 우리의 반쪽은 누구일까?
우정을 나누는 상대일까? 사랑을 나누는 상대일까? 아니면 가장 닮은 내 가족일까?
<반쪽의 이야기>에서 답을 찾자면 답은 나이다.
나의 원래 반쪽이 누구이든 간에 남은 반쪽을 만드는 것은 오로지 나의 선택이다.
친구로 반쪽을 채워도 되고, 사랑으로 반쪽을 채워도 되고, 가족으로 반쪽을 채워도 된다.
심지어 비워 놓아도 된다.
채워야 하는 것이 있을 때에는 반드시 꽉 채워야만 완벽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언제나 꽉 채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잘 채우는 것이다.
그 양과 모양이 어떤지, 완벽함에는 정답이 없다.
어쩌면 끝나지 않았을 엘리의 반쪽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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