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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안은영 을 읽었다.

오랜만에 책을 읽었다. 

지난주에는 감기에 걸려서 몸을 사리고 땀 빼는 일에 집중했다.

정세랑 작가를 몰랐을 때는 

책 제목만 보고 왠지 전형적인 스트레오 타입을 그려낼 것 같아서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나야말로 책 제목만 보고 편견에 갇혀있던 건데... 반성한다... 아주 많이. 누가 누굴 지적하는지 참ㅎ

어쨌든 믿고 보는 정세랑 작가니까 즐겁게 읽었고

현재까지는 정세랑 작가의 책들 중에서 보건교사 안은영이 가장 좋다. 

책 두께는 가장 두꺼워서 사실 부담감이 있었는데 아주 빠르게 후루룩 읽었다.

여전히 추천을 하라면 <피프티 피플>을 꼽겠지만

<보건교사 안은영>은 아주 나 같은 사람의 취향을 저격할 거다.

학원물에 초능력(?) 이야기니까~ 

예전에 왓챠로 취향 분석을 했을 때 학원물을 좋아한다는 진단을 받았는데

그전까지는 전혀 몰랐는데 그날 내 취향이 뭔지 정의 내리고 심히 충격받았다.

TV에서 틀어주는 만화영화는 열심히 봤으면서 

따로 애니나 만화책을 찾아보면서 크지는 않았어서

학원물이라는 장르는 나한테 어쩐지 응큼해 보였다. 

하여튼 간 이 편견 덩어리... 

각설하고 난 학원물을 좋아한다.

한두 살 먹다 보니 이제는 학원물을 좋아한다고 하면 좀.... 변태이거나.. 함버트 같은.. 느낌이 들 것 같아서 선뜻 말하지 못하지만

학원물 좋아한다.

모르겠다. 내가 아직 십 대라고 착각해서 학원물이 더 재밌게 느껴지는 걸까? 

뭐 나이가 더 들면 바뀔 것 같기도 한데 진짜로 바뀔는지는 모르겠다.

학원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별 거 없다.

난 학교를 좋아한다. 

대학교를 갓 입학했을 때 깜짝 놀랐던 것이

아무래도 성적과 거시적인 취향을 고려해서 모인 집단이다 보니 

부딪히는 점 없이 잘 맞는다는 거였다. 

그때는 이런 교집합이 많은 구성이 참 좋았는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공통점이라고는 지역과 나이밖에 없는 애들끼리 뭉텅이로 섞어 쳐서 그 안에 정말 별의별 애들이 다 있는 고등학교가 더 재밌고 건강한 집단인 것 같다.

무엇보다 다양성이 보장되는 구성이니까 말이다. 

요즘은 우연히 모르는 사람을 알게 되는 일 없이

누굴 만날지 어디서 만날지 비슷한 범주 안에서 선택하다 보니까 다양성이 확 떨어지고 있다. 

그게 요즘 가장 걱정하는 일 중에 하나이다. 

항상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서... 

이러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는 않을지 심히 걱정된다. 

 

 

 

 


p.10
이 단순하고 모난 데 없는 사랑스러운 생물은, 불행히도 다른 사람한테서도 가장 좋은 부분만을 발견하는 나머지 누가 고백만 해 오면 족족 다 사귀어 왔다. 

 

정말이지 정세랑 작가는 사람을 사랑스럽게 표현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성혜현' 같은 사람은 내가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는 캐릭터이다. 

안 봐도 눈이 반짝반짝 빛날 것 같고,

나와 별로 친하지 않은데도 난 끊임없이 그 애를 궁금해하고 그 앞에서 웃게 될 것 같은 그런 타입.

이 단순하고 모난 데 없는 사랑스러운 생물들!

 

 

 

p.38
고등학생이면 벌써 다  큰 것 같지만 그래도 비이성적인 상황에서 어른들을 그만큼 잘 믿기도 힘들다. 믿지 말아야 할 어른들까지 철석같이 믿어 버린다. 

 

주변에 아는 동생이 없다. 

동생이라고 해봤자 한두 살 어린 정도? 

어린 친구들 만나는 게 참 힘든 것 같다.

사실 그동안은 딱히 스스로가 어른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주변 친구들이 서서히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을 봐서 그런지 나도 덩달아 어른 구실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하반기에 공들여 썼던 자소서 항목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물음이었는데

그때 나는 의연한 어른, 행동하는 어른, 사랑을 나누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지금 하나 더 추가하라고 하면 믿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누군가가 나한테 기댈 수 있을 때 그제야 어른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며칠 전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없다.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는데 누굴 믿어야 할까?'

이런 질문에 대답은 보통 두 가지 인 것 같다. 

세상은 나 혼자 사는 거다. 자신을 믿어라. 

아니면 정반대로 그래도 믿어라.

나는 후자이다. 

어쩐지 믿어라 라고 하면 강요의 느낌이 들기도 하고

뭔가 맹목적인 느낌이 들어서 꺼려지지만

믿을 사람이 없어도 신뢰하며 사는 게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늘도 믿는다.

내 옆을 지나가는 낯선 이 가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이라고, 우리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필요한 사람이라고 말이다. 

 

 

 

p.96
운동장 멀리 저쪽 변인데도, 좋아하는 사람의 모든 건 땀방울 하나까지 잘 보인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틀 전에 레드벨벳 콘서트 <라루주>를 갔다 와서 더 크게 와 닿은 문장이다.

사실 땀방울까지 보이진 않았다. 

내 마음이 그렇게 큰 마음은 아닌가 보다 하하하하.

땀방울 같은 건 있는지도 몰랐다가 스크린을 보고 겨우 알은 주제에

이 문장이 왠지 내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것 같아서 곱씹어 봤다. 

뭔가... 부끄럽지만 하여튼 그런 것 같다.

내가 레드벨벳 노래 중에서 평소에도 종종 찾아 들을 정도로 좋아하는 것은 <little little>인데

<little little>과 좀 닮은 것 같다. 

너의 작고 작은 것도 내게는 커다란 걸
너로 일렁이는 내 맘 자꾸 살랑살랑 불어 내 세상을 흔들어 넌 (oh)

너무 사랑스럽다....

유정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그 끝이 어떻든, 그 사람의 실체가 어떻든

중요한 것은 사랑했던 순간이고 그런 사랑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아주 사랑스럽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p.117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해서 자신의 힘을 버리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친절이 지나치게 저평가 된 덕목이라고 여긴다는 점에서 은영과 인표는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친절이 지나치게 저평가 된 덕목이라고 여긴다는 점에서 은영과 인표와 나는 통하는 구석이 있다. 

친절은 어려운 일이다. 

몸을 단정히 하는 것처럼 친절에도 아주 많은 수고가 들어간다. 

내가 체력을 기르려고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친절하기 위해서이다. 

나한테 있어서 친절하지 않음은 대충 산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세상 사람들이 더 친절하면 좋겠다. 

다 같이 스트레칭도 쭉쭉하고 달리기도 열심히 해서

다들 쉽게 말하지 않고, 쉽게 상처 주지 않는 친절한 이웃들로 살기를 바란다. 

나부터도 노력해야지. 

 

 

 

p.183
학교에서 두 사람을 가장 개의치 않아하는 무리였다. 하긴 그렇게 폭넓고 놀라운 이야기들에 푹 젖어 사는 아이들이었으니, 쉽게 편견에 사로잡힐 리 없었다. 

은영은 아직도 학교에서 만화 동아리 애들만 보면 "너흰 정말 좋은 애들이야." 하고 말해 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 학교에 만화 동아리는 없었다.

그런데 만화를 좋아하는 애들은 꽤 있었다. 

공부를 잘하는 소위 우등생 애들이었는데 만화책을 정말 좋아했다. 

걔네들이 하는 얘기를 귀동냥으로 들어 bl이 먼지 어쩌구가 먼지 알게 되었다.

난 TV에서 해주는 만화는 열심히 봐도 

인터넷에서 애니를 찾아본다거나 만화책을 찾아보는 애는 아니어서

그 세계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다만 만화를 좋아하는 애들한테는 관심이 있었다.

위에서 말한 애들 말고 소위 아웃사이더로 취급되는 그들만의 세계가 단단한 애들이 있었는데

난 이상하게 걔네들한테 호감이 있었다.

뭘 그렇게 재밌게 얘기하는 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내가 만화를 잘 모르니 그런 얘기는 나누지 않았지만

이따금씩 깔깔거리면서 얘기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이런 점에서 초중고등학교가 좋은 것 같다.

정말 별다른 공통점이 없는데도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는 그 낮은 진입장벽이 그립다. 

 

 

 

p.192 
강선과의 대화는 언제나 은영이 조금 바보가 되어 끝났다. 더 바보가 되어도 좋으니 가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가끔 무리 지어 노는 친구들한테 이런 말을 들을 때가 있다. 

'우당탕이는 꼭 ㅇㅇ한테 혼나.'

그럴 때마다 에잉 내가 뭘 혼나! 하는데

참 재밌게도 이런 말이 나오면 꼭 증거라도 갔다 대듯이 

그 ㅇㅇ들한테 혼난다. 

친구들끼리 혼내는 게 어딨냐고 하지만 하여튼 간 혼난다. 

학교 다닐 때는 많이 그랬던 것 같다. 

등교하면 보자마자 한 바퀴 돌아보라고 해서 

머리를 왜 안 말리고 왔냐, 아침은 먹었냐... 정말 엄마 뺨치게 혼냈다. 

그때 짜증 나고 싫었냐고 물으면 절대 아니다. 

아 뭐야ㅡㅡ 잔소리 그만해ㅡㅡ 할 때도 분명히 있었지만

대부분은 은영처럼 조금 더 바보가 되어도 좋으니 이 친구의 애정 어린 잔소리를 나이 먹어서도 듣고 싶다고 바랐다.

 

 

 

p.210
내가 너를 싫어하는 것은 네가 계속 나쁜 선택을 하기 때문이지 네가 속한 그 어떤 집단 때문도 아니야. 이 경멸은 아주 개별적인 경멸이야. 바깥으로 번지지 않고 콕 집어 너를 타깃으로 하는 그런 넌더리야. 수백만 해외 동포는 다정하게 생각하지만 너는 딱 싫어. 그 어떤 오해도 다른 맥락도 끼어들 필요 없이 누군가를 해치는 너의 행동 때문에 네가 싫어. 

 

모든 혐오는 개별성을 무시하고 집단화해서 묶어 버리고, 그로부터 뽑아낸 속성을 극대화해서 과장하는 것에서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편리함을 이유로 집단화할 때가 많다. 

어제는 오빠가 만들어 주는 떡볶이 인가 뭔가 하는 가게 지나고 있었는데,

가게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이, 가게 바로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인도에 담배꽁초를 던져 버리는 걸 봤다.

그전부터 난 그 가게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역시 그럴 줄 알았다, 저런 이름의 가게는 안 봐도 뻔하다.

쓸데없이 오빠라느니 강조하는 사람이면 안 봐도 비디오다. 이런 말을 했는데

말을 하면서도 아차 싶었다. 

그럼에도 멈출 수가 없었다. 

하여튼 간 편견 덩어리....

시간도 많은 주제에 쇼트컷이라고 합리화하면서 편견을 마구 끄집어내고 싶을 때가 있다.

반성한다. 

 

어쨌든 사람을 싫어하려면 이 정도 가이드라인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싫어하는 데 이유가 없다는 말을 아주 싫어한다. 

좋아하는 거나 싫어하는 거나 이유가 없을 수가 없다. 

분명히 이유가 있는데 말하기 부끄러워서 그런 것이다. 

좋아하는 데 부끄러워 이유를 대지 못하는 것은 사랑스럽다. 

그렇지만 싫어하는 이유가 말하기 부끄러워 없다고 하는 것은 정말 경멸한다. 

싫어하는 데에 이유가 없어서는 안 된다. 

그 이유가 띠용스러울 만큼 사소한 건 상관이 없지만

이유가 없는 건 안된다. 

그냥 싫어라는 말이 가장 싫다. 

너무 쉬운데 너무 폭력적인 말이다.

이왕이면 미워하고 싫어하지 않고... 혜현처럼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면 좋겠다. 

 

 

 

p.249
자연이라는 건 그런 게 아닌가. 늘 있었던 것, 앞으로도 있을 것.

 

이 말이 왜 이렇게 큰 힘이 되는지 모르겠다. 

나와 같은 사람들은 늘 있었고 앞으로도 있겠지.

세상은 무수한 돌연변이의 집합체일 것이다. 

더 많이 다양하고 더 많이 존중하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p.265
어차피 언젠가는 지게 되어 있어요. 친절한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을 어떻게 계속 이겨요. 도무지 이기지 못하는 것까지 친절함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괜찮아요. 그게 이번이라도 괜찮아요. 

 

읽을 때는 '어차피 언제 가는 (우리도) 지게 되어 있어요. 친절한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은 어떻게 계속 이겨요.'라고 읽었다. 

그래서 뭉클했는데... 

다시 책상에 앉아 읽으니 이것도 좋다. 

친절함이 패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친절함에는 승패 같은 건 크게 중요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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