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시인은 항상 좋아하는 시인을 꼽을 때 두 손가락 안에 든다.
김소연 시인의 시집을 읽었을 때가 내가 가장 촉촉했던 시절이라 더 애착이 가는 것 같다.
한 글자 사전은 한 글자로 된 단어들의 사전이다.
사전적 의미의 사전이 아니라, 작가의 시선이 그대로 담긴 뜻풀이 집이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책 자체는 두꺼운 편이지만 한 단어 당 짧게는 한 줄에서 길어야 몇 페이지로 짧기 때문에 부담 없이 읽기에 좋다.
내가 읽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집중력이 많이 떨어져서 책을 읽기가 쉽지 않았는데 짧은 글들로 이루어져 있고 좋아하는 김소연 시인의 글이라 선택했다.
읽는 중간중간에 꼭 한번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유하고 싶은 생각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짧은 글이지만 통찰력이 엿보여서 캬 소리가 절로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그 통찰력 때문에 뼈가 아프기도 했다.
그래서 두고두고 곱씹고 싶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느 단어에서 그런 인상을 느꼈는지, 내가 놓친 부분을 잡아내지는 않았을지 궁금했다.
각자의 취향대로 분류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나의 경우에는
감탄이 나오는/ 뼈 아픈/ 여러 번 읽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의문이 드는/ 가슴에 새기고 싶은 으로 나누었다.
이렇게 카테고리를 나누어 놓고 이야기를 해보면 더 많은 이야기가 오갈 것 같아 기대된다.
제목이 사전인 만큼 뜻풀이에 충실히 임하고 있다.
그러나 딱딱하게 '사전적'으로 풀이하지는 않는데 그래서 재미있는 책이 되었다.
기본적으로 한 글자로 된 단어들의 활용을 보여주며 맥락상 미묘하게 달라지는 뉘앙스를 잡아내고 있다.
다의어와 동음이의어를 이용하여 문장을 나열하기도 하는데
단순히 동음이라는 이유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아하'의 순간이 탄생하는 것들만 액기스처럼 모아놓고 있다.
'다급하면 숨이 넘어가고 다급하게 만들면 숨이 막힌다.'
얼핏 래퍼의 펀치라인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말 그대로 강력한 펀치가 살아있다.
단어의 활용들과 뜻풀이가 주로 나오지만
단어와 관련된 긴 글로 뜻풀이를 대신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시를 인용하기도 해서 지겹지 않게 완독 할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던 이유는 작가가 툭 던진 질문들 때문이었다.
분명 엄청 놀랍도록 새로운 시선도 아니고, 새로운 뜻을 창조하는 것도 아닌데
그간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단어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이미 익숙해져 있는 것들에서 새로움을 찾아내는 김소연 작가의 능력이 부러웠다.
반성하는 시간도 있었다.
요즘 '즙'이라고 하면 눈물을 대신하는 단어로 짜낸다는 말과 많이 써왔다.
그러나 작가는 즙을 생명이 아닌 것엔 즙이 없다.'라고 설명했는데
'즙을 짠다.'라는 말과 오버랩되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격하시켜 표현했던 누군가의 즙도 그 누군가가 살아있음을 의미하는 거였구나.
절대 조롱하듯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구나.
작가의 페미니스트적인 시각이 엿보이는 구절도 많다.
그것들만 따로 모아 담론으로 만들어도 손색없을 정도로 날카로운 시선을 담고 있다.
단어를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부럽다.
다양한 단어들을 적재적소에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 내 꿈이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에 나지 않지만
'꼭 들어맞는 단어는 단 하나뿐이다'라는 말을 굉장히 좋아한다.
대학교 1, 2학년 때 어떤 책을 읽다 마주한 문장인데
그때부터 늘 꼭 들어맞는 단 하나의 단어를 찾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항상 어휘에서 부족함을 느끼고 있다.
무엇을 해야 풍부하게 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꼭 그렇게 되면 좋겠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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