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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봤다

전혀 볼 생각이 없었는데 멋있는 액션이 나온다고 해서 보러 갔다.

그래서 딱 하나, 액션만 보러 갔는데 오히려 기대를 너무 하지 않은 탓인지 나름 재밌게 봤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보기 전에 가장 우려했던 것은 지나치게 잔인하지 않을까였다.

첫씬이 왠지 모르게 아주 무서서워서 (영화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아주 피난리가 나겠구만~ 했더니

아주 보란 듯이 선을 지켰다.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맥락상 이해할 수 있는 장면들은 딱 거기까지만 하고 더는 보여주지 않았다. 

나는 그 점이 다른 알탕 영화들이랑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한다. 

알탕의 탈을 쓰고선 선을 잘 지키는 영화. 

 

액션은 기대했던 것처럼 멋지진 않았다.

딱히 액션 때문에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자글 자글한 황정민과 이정재가 너무 보고 싶다면 보러 가도 되고~

아 박정민이 트랜스젠더 역을 연기하는데 그게 보고 싶어서라면 보러 가도 된다.

박정민은 연기를 꽤나 잘했다.

성별을 떠나서 정말 그 캐릭터처럼 보인다고 해야 되나...

자꾸 칭따오 아저씨가 겹쳐 보여서 처음에는 칭따오 아저씨인 줄 알았지만ㅎㅎ

오히려 황정민 이정재는 캐릭터가 아니라 그냥 황정민 이정재처럼 보였다.

그래서 좀 신경 쓰였다. 

두 배우가 자꾸 캐릭터를 가리니까 자꾸 현실이 몰입을 방해해서

오.. 이정재 자글자글 하네.. 저거 목에 문신은 헤나려나 분장이려나... 맨날 지우고 다시 그리나? 이런 생각이 자꾸 들었다.

 

어제인가? 영화를 보기 전날에 <차이나 타운> 얘기를 했었다.

친구가 박보검의 호의에 대해 정말 호의였을지 아니면 끼를 부려 뭐 좀 얻어내려는 빅픽쳐였을까 물어봤었다.

나는 당근 그냥 호의라고 했는데 

그야 차이나 타운은 전형적인 영화에서 성별만 반전한 것이고

박보검을 기존의 여자 캐릭터로 본다면

그런 식으로 궁핍한 환경에서도 선한 마음을 잃지 않고 어딘가 순진하기까지 한 아가씨들이 꽤나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캐릭터들이 크게 한 건 할 때는 오로지 죽을 때뿐인데

죽음으로서 주인공으로 각성시키는 도구로 끝이지, 촘촘한 캐릭터는 절대 아니다.

여하튼 이런 얘기를 하고 다음 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보았더니 웬걸...

배우자가 없는 상황에서 아이를 끝까지 지켜내서 키우는 데다가 위급한 순간에도 상대에게 아이의 존재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리지 않고 성격이나 기승전결이 하나도 없이 오로지 죽음으로써 주인공을 각성시키는 그 도구적 존재가 또 나오고 있더라.

심지어 왜 죽는지 나오지도 않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래서 영주는 누가 죽였는데! 무슨 사연인데! 했지만

끝끝내 누가 죽였는지 왜 죽었는지 나오지도 않고 땡이었다.

알탕이 뭐 그렇지~

 

<차이나 타운>은 전날 얘기하지 않았으면 굳이 겹치진 않았을 거고 영화를 보면 <로건>이 생각난다.

손에 피를 묻히는 일을 하던 아버지가 이제까지는 가족인 줄도 몰랐던 딸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점이 큰 가지니까.

부성애라는 키워드로 본다면 상당히 접점이 많지만 본질은 아주 다르다. 

둘 다 딸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지만

<로건>은 '물려주지 않기 위해'싸우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오로지 '지키기 위해' 싸운다.

 

사실 모든 싸움은 지키기 위해서 시작된다. 

물려주기 위해 애를 쓰고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러나 로건의 경우는 그 반대였기 때문에 나를 미치게 한 거다.

솔직히 말하자면 영화 보고 울었는데 로건 생각이 나서 울었다. 

자신이 가진 세상을 단 하나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싸우는 건 도대체 어떤 심정일까 얼마나 간절할까.

타자 치는데 또 눈물 날 거 같다.

 

좋았던 점도 있다.

마지막 컷이 되게 여운이 남는다.

남들은 좀 촌스럽다고 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그런 식으로 완성되는 가족 사진을 부모는 보지 못할 테지만

그렇게라도 세 사람이 한 액자에 담기게 되었다는 것을 얼마나 기뻐할까 좀 뭉클해진다.

 

그래도 로건이랑 다르게 결말에서 안도가 되지 않는 건

딸을 묘사한 방식이 달라서 인 거같다.

둘 다 입을 닫아 버린 것 똑같은데

한쪽은 말만 안하다 뿐이지 의사 표현이 확실하고 

한 쪽은 캐릭터라기보다는 그냥 목적에 가깝게 그려지다 보니 앞으로가 걱정된다.

로라는 함께 하는 친구들도 있고 스스로 잘 개척해서 살아갈 테지만

유민이의 앞날은 전적으로 유이한테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야 된다.

유민이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보이고 부디 유이가 등쳐 먹거나 어디서 사기당하지 않기를 기도하게 된다.

로라는 걱정이 안 되는데 유민이는 너무 걱정됨.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따라가다 보면 세상에 중개업이 안 끼는 곳이 없구나 싶다.

진짜 하나부터 열까지 중간상이 안 끼는 데가 없다. 

여기 가서 누굴 만나고 그 누구는 쟤를 소개해 주고 쟤는 얘를 만나보라고 하고 

이렇게 보면 참 극도로 사회적인 사회인 것 같다.

타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에 살면서 왜 서로를 착취 못해 안달이 났는지.

특히 그 중간 단계들은 착취가 아니고선 돌아갈 수가 없는 게 너무 잘 보여서 속이 쓰렸다.

 

한줄평은...

로건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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